사람들은 옷의 겉모습을 보지만, 우리는 그 옷을 지탱하는 원단의 생애를 봅니다.
1960년대 대구의 거친 숨결부터 오늘의 정교한 공정까지, 3대에 걸쳐 이어진 것은 단순한 가업이 아니라 품질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안목의 계보입니다.
모든 시작은 1960년대 대구, 할아버지의 영진상사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섬유 가공의 중심이었던 현장에서 영진은 손꼽히는 규모로 움직였고, 번거롭고 까다로운 선염 공정만을 고집했습니다.
길게 나아가라는 이름의 뜻처럼, 한 번을 입어도 변치 않는 원단의 근본을 다음 세대에게 남겼습니다.
1999년 IMF 한복판에서 아버지는 차 한 대와 500만 원을 들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통장 잔고가 2만 원이던 시기에도 부모님은 아기에게 가장 오른쪽, 가장 비싼 분유를 집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의 입에 들어가는 것일수록 타협할 수 없다는 판단이 이후 영진의 품질 철학이 되었습니다.
이 선택은 곧 하나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경쟁사들이 원가를 낮추기 위해 공정을 생략할 때에도, 아버지는 다시 한 번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영진의 피를 이은 그에게 원단의 품질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질 수 없었던 아버지는 원단 샘플 몇 개를 들고 동대문 새벽시장으로 나갔습니다.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매일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인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30일째 되는 날 한 상인이 그를 불러 세웠고,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고품질 선염 원단은 첫 거래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버지는 단순히 원단을 떼어다 파는 상인이 아니었습니다.
섬유공학을 전공한 그는 패턴과 소재를 직접 설계하는 원단 개발자로서 자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양면 스트라이프, 독창적인 패턴, 고도화된 공정들은 모두 그의 설계도에서 나왔습니다.
시장은 그 정직한 고집을 신뢰로 알아보았습니다.
대한민국 셔츠 두 벌 중 한 벌에 쓰이던 전성기를 지나며, 삼성물산, LF, 빈폴 같은 브랜드들이 그의 설계를 선택했습니다.
그 안목은 일본의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통과하며 글로벌 시장의 보이지 않는 거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제 3대째가 그 서사를 이어받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영진과 아버지의 혁신을 합쳐, 오늘의 YJ TexLab은 시간이 증명한 안목을 제안하는 하우스로 자신을 다시 정의합니다.
우리가 찍는 인장은 단순한 태그가 아니라, 원단의 품질이 오래 남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